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 판 메이헤런 (문단 편집) == 한 판 크게 벌이다 == [[파일:external/s2.hubimg.com/6334073_f260.jpg]] 2차 대전이 끝날 무렵 연합군은 [[헤르만 괴링]]이 약탈한 것으로 추정되는 예술작품 중에서 페르메이르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작품(『간음한 여인과 예수(Jesus with the Adultress)』)을 발견하였고, 그것이 판메이헤런이 판매한 작품임이 밝혀졌다. 당시 나치 청산에 열을 올리고 있던 네덜란드 사람들 입장에서는 판메이헤런은 [[국보]]급 그림을 나치 독일에 팔아넘긴 전범 협력자였으며 반역죄로 법정에 세워 처벌하려 하였는데 이 경우 당시 네덜란드 국법에 의거해 '''[[사형]]'''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판메이헤런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로 인해 재판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는데… >판메이헤런: 그거 사실 위작이었다. 내가 조작한 거였다. >[[검사(법조인)|검사]]: 거짓말이다. >판메이헤런: 못 믿겠으면 즉석에서 내가 그려주마. 어때? >검사: 좋다. 한번 해봐라. …결국 경찰 관계자들의 감시하에 6주 동안 위작을 그리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고, 처음에는 저 사기꾼이 책임을 면피하려고 거짓말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서서히 정교한 위조작품이 나오는 걸 보고 혀를 내둘렀다. 이 문서 맨 위의 사진이 바로 이 마지막 위작인 《성전에서 설교하는 어린 예수》(Young Christ in the Temple)를 그리는 장면. 이를 계기로 판메이헤런은 전세계적인 관심을 받게 되었으며, 네덜란드에서도 국보급 보물을 팔아넘긴 [[매국노]]에서 더러운 나치놈들을 골탕먹인 위대한 [[사기꾼]]으로 평가가 수정되었다. 이렇게 판메이헤런이 위작을 그리는 기술이 있음을 보여주었으니 나머지는 판메이헤런이 판 작품이 위작이란 사실을 증명하면 결백이 입증되는 것이었다. 당대 미술전문가들과 비평가들은 '''[[주작]]질에 넘어갔다는 사실에 쪽팔려서''' 심사는 피하려 하였으나, 진위를 밝히기 위해 벨기에 왕립박물관 연구소장 폴 코어만스 박사를 필두로한 코어만스 위원회가 조직되었고 어쩔 수 없이 심사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17세기에는 사용되지 않았던 방법이 확인되어 판메이헤런의 작품은 모두 정교한 위작으로 판명나게 되었다. 좀 늦긴 했지만 결국 판메이헤런의 원래 의도대로 비평가들을 엿먹이는데 성공한 것. 결국 판메이헤런은 미술품 위조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받게 되었고 1년형을 선고받았지만 건강 문제로 인해 수감되지는 않았고, 1947년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이 양반이 죽고 난 이후로도 계속 논란이 불거져 얀 페르메이르 및 동시기 화가들의 작품과 판메이헤런의 위작에 대한 조사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1946년]]의 결론을 뒤엎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방사능]]을 이용한 조사에서도 시대적으로 위작임이 인정됐다. 우스운 건 괴링이 미술품을 사면서 지불한 돈조차 '''[[위조지폐]]'''였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앗! 시리즈]]의 '미술이 수리수리'라는 책에서는 "가짜 그림을 팔고 받은 가짜 돈을 가짜 은행에 가짜 저금을 하면 되겠다"라는 드립을 쳤다.] 오랫동안 술과 담배, 모르핀에 중독되어 있었던 판메이헤런은 괴링에게 그림을 넘기던 시점에서 이미 건강이 대단히 좋지 않았으며, 약물 중독으로 골골대며 그려낸 그림의 품질도 그리 좋지 못했기 때문에 얀 페르메이르의 진품 그림과 비교를 한 번만 했어도 괴링은 속지 않았을 것이라는 견해 또한 있다. 그러나 당시 대부분의 미술관들은 전쟁과 나치의 미술품 약탈 때문에 얀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비롯한 주요 작품들은 비밀 수장고에 피신시켜놓은 상태라 얀 페르메이르의 그림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으며, 설령 어딘가에서 얀 페르메이르의 그림을 구해 비교를 했더라도 그 그림 또한 판메이헤런의 위작이었을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에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덧붙여 괴링은 죽기 전 누군가에게 자신의 얀 페르메이르 그림이 판메이헤런이 그린 위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듣고 나서 [[뒤통수|세상의 쓴맛을 처음 맛본 아이 같은 절망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더불어 위작 작가라서 위작만 그린 사람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지만, 남의 작품을 사칭하지 않은 오리지널 작품도 남아있다. 게다가 워낙 유명세를 탔던 인물인 까닭에 판메이헤런의 작품도 제법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고 한다. 위작임이 이미 판명된 작품조차 고가에 팔린다고. 워낙에 실험정신이 뛰어났던 사람이라 수천점에 달하는 그림을 아주 다양한 기법으로 그려 남겼으며, 장르 또한 고전적인 풍경화부터 배경과 사물이 뒤섞인 [[초현실주의]]적 그림까지 두루 섭렵했다. 초상화가 특히 높은 평가를 받는다고. 아이러니하게도 판메이헤런이 유명해지고 그의 그림들이 높은 가격에 거래되자 '''판메이헤런 본인의 아들'''인 자크 판메이헤런을 비롯해 판메이헤런의 그림을 위조하는, 즉 위작의 위작을 그리는 위작 작가들도 덩달아 늘어났다고 한다. --[[부전자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